1. 트라우마를 부정하라 – 과거는 변명의 도구일 뿐이다
우리는 종종 나는 과거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 부모의 무관심, 학교에서의 따돌림, 상처를 줬던 친구나 연인 등 우리가 살아오며 겪은 일들은 지금의 성격과 행동을 결정한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프로이트의 영향으로 우리는 트라우마라는 개념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아들러는 이 개념 자체를 부정한다. 그는 단호히 말한다. 트라우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단순히 상처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사건이 지금의 나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그 과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가 나를 만든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 청년이 있다.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무서워한다. 이유는 어릴 때 친구에게 따돌림을 당한 경험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사람들과 친해지지 않으려 하고, 대화를 회피하며, 혼자 있는 시간을 늘려간다. 그는 이 모든 행동의 원인을 과거의 상처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들러는 반대로 본다.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기 위해, 과거를 끌어다 쓰고 있다. 그는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이 두렵고, 실패할까 봐 겁난다. 그래서 지금의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를 이용하는 것이다.
아들러는 인간을 목적론적 존재라고 본다. 즉, 우리는 과거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목적을 이루기 위해 현재의 행동을 선택하는 존재다. 그 청년이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건, 어울리는 것이 두렵고, 상처받기 싫어서다. 그는 고립이라는 현재를 선택했고, 그 정당화 도구로 과거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삶을 선택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선택을 과거 탓으로 돌리고 있진 않습니까?
이 장은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 나는 스스로를 선택하고 있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과거가 아닌, 나의 현재 의지와 목적이 인생을 이끈다는 아들러의 관점은 우리에게 지금부터라도 달라질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 트라우마는 변명이다. 변화하지 않으려는 용기의 부족일 뿐이다.
2.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 인정욕구를 내려놓는 연습
우리는 다양한 고민을 안고 산다. 직장 스트레스, 연애 문제, 가족 갈등, 자존감 부족, 돈 문제, 불확실한 미래. 하지만 아들러는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결국 ‘인간관계’라고 말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를 느끼기 때문에 고민도 그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아들러는 인간관계의 중심에 인정욕구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인정은 곧 존재의 증명이다. 그러나 이 욕구는 타인의 시선과 판단에 우리 삶을 맡기는 결과를 낳는다. SNS에서 ‘좋아요’를 받기 위해, 회사에서 칭찬을 듣기 위해, 친구에게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를 억누르고, 원하는 것을 포기한다. 결국 인정욕구는 불행의 씨앗이 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자신이 직장에서 과소평가당한다고 느낀다. 동료보다 훨씬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이런 마음은 ‘나는 가치가 없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아들러는 이렇게 말한다. “인정을 받기 위해 사는 삶은 타인의 인생을 대신 사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어서 강조한다. 우리는 인정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기여하기 위해 태어났다
인간은 자신이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고 느낄 때 진정한 자존감을 얻는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아진다. 이 장은 모든 고민의 근원인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기여하고 있다는 감각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라고 말한다.
진정한 자유는, 누군가의 기대에서 벗어나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자유는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다. 인간관계의 고민을 풀기 위해서는, 타인보다 먼저 ‘나 자신’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3.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라 – 책임은 각자의 몫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엮인다. 부모, 자녀, 친구, 동료, 연인. 그들과의 관계에서 가장 큰 갈등은 왜 저 사람은 내 말을 안 듣지, 왜 저렇게 행동하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아들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과제 분리를 제안한다.
과제 분리란 간단히 말해, 이건 누구의 문제인가?를 구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녀가 공부를 안 해서 걱정된다면, 그 문제는 자녀의 과제다. 부모는 조언하거나 지원할 수는 있지만, 공부를 대신할 수는 없다. 또 다른 예로,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면,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감정은 그의 과제다. 내가 그 감정을 조절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타인의 감정과 선택을 통제하려 한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상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혹은 내 방식대로 행동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태도는 결국 피로감과 갈등을 만든다. 우리는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뒤섞으며 스스로를 무겁게 만든다.
아들러는 말한다. 과제 분리는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을 서로 존중할 때, 관계는 평등해진다.” 특히 부모와 자녀, 연인 관계에서 과제 분리는 갈등을 줄이고, 자율성을 회복하는 데 효과적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하며, 그 선택의 결과도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남이 나를 싫어할 자유도, 내가 남을 싫어할 자유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성숙한 인간관계의 시작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개입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내가 책임져야 할 것에는 끝까지 책임지는 것. 이 간단한 원칙이 관계의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4. 세계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들러 심리학의 독특한 점은 ‘열등감’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열등감은 성장의 자극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열등감이 ‘콤플렉스’로 굳어질 때 발생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무능력한 존재라고 낙인찍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점점 움츠러든다. 이 장에서 아들러는 세계의 중심이 자신이라고 믿는 인간의 본성을 다룬다. 우리는 늘 내가 더 나아야 한다, 내가 주목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SNS의 좋아요 수, 직장 내 인기도, 연인의 관심. 이런 요소들로 나를 확인하려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욕구는 결국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아들러는 말한다. 당신은 특별할 필요가 없다. 그저 당신 자신으로 충분하다. 이는 우리가 열등감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이기도 하다. 특별해지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비교에서 벗어나고, 경쟁에서 해방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협력할 수 있게 된다.
수평적 관계는 아들러 심리학의 또 다른 핵심 개념이다.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위계적이다. 나는 더 잘났고, 너는 못났다는 식이다. 하지만 수평적 관계는 모두가 다르지만 평등하다는 태도를 바탕으로 한다. 이 방식은 관계를 훨씬 편안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
당신은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이 단순한 문장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열등감에서 벗어나고, 진정한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5. 지금, 여기, 행복하게 살라 –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다
우리는 행복을 마치 목표처럼 여긴다.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하면, 결혼하면, 아이가 태어나면, 집을 사면... 무언가를 이루면 그때는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떠한가? 목표를 이뤄도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토록 바라던 취직 후에도, 불안은 다시 밀려오고, 더 높은 성과를 기대하게 되며, 비교와 피로는 끝이 없다. 아들러는 말한다. 행복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선택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긍정의 말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통찰이다.
우리는 ‘완벽한 조건’이 갖춰져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들러는 정반대의 관점을 제시한다. 조건이 갖춰져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조건과 상관없이 행복하겠다고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자유인이다. 즉, 우리는 행복해지기로 결단하지 않는 한, 어떤 상황에서도 불행할 수 있다. 반대로,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삶을 받아들이고,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야말로 삶의 주인이 된다.
아들러가 강조하는 것은 기여감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감각, 즉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에서 행복을 느낀다. 그 기여가 거창할 필요는 없다. 친구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거나,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거나, 회사에서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처럼 일상의 아주 사소한 기여도 충분하다. 우리가 흔히 느끼는 공허함은 바로 이 기여감이 단절된 데서 온다. 아들러는 “행복은 기여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즉,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이야말로 가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기여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일은 때로 비판을 동반한다. 우리는 자꾸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들러는 말한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을지라도 당신의 삶을 사는 용기를 가져라. 행복해지는 데 필요한 것은 기술도, 환경도 아닌 바로 이 용기다.
또한 아들러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사람들은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에 휩싸여 현재를 놓치고 살아간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진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지금 여기’뿐이다. 지금 나의 말, 나의 선택, 나의 행동이 나의 삶을 결정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행복해지기로 결심해야 한다.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해야 한다.
행복은 절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연인이, 부모가, 자녀가, 사회가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스스로 행복을 선택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조건이 갖춰져 있어도 우리는 여전히 불행할 수 있다. 반면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 지금 여기서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아주 작은 것에서도 행복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 공원에서 맞는 바람,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짧은 인사 한 마디 속에서 말이다.
행복은 크고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다. 오히려 삶을 이루는 작고 평범한 순간들 속에 숨어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만큼 ‘행복해질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은 안 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늘 미래만 바라본다. 하지만 아들러는 강조한다. 행복해지는 데 필요한 것은 지식이나 능력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행복을 선택하겠다는 결심이다. 그 결심은 결코 쉽지 않다. 타인과의 비교, 불안, 열등감 등 많은 심리적 방해물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방해물을 인정하고도 행복을 향한 선택을 할 수 있어야 우리는 진정한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와의 갈등,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행복을 잃는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그 모든 요소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내가 지금 이 순간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태도가 긍정이고 감사이며, 기여하려는 마음일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다.
미움받을 용기의 마지막 장은 단순한 해피엔딩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독자에게 던지는 철학적 도전이다. 당신은 지금 행복을 선택하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우리는 멈춰 서게 된다. 그리고 답한다. 그래 지금부터라도 내가 나의 삶을 선택하겠다. 이 결심이야말로 미움받을 용기의 진짜 의미이며,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첫걸음이다.